법무법인 서정 고문 최영수 (前 공정위 규제개혁단장)
▲ 법무법인 서정 고문 최영수 (前 공정위 규제개혁단장)
노자의 도덕경 상편 제2장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있는데 이는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이를 손쉽게 적응하려는 현대인들이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편을 가르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다. 미래학자들은 상생의 원리가 21세기 인류를 이끌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생은 생태학에서 파생된 개념인 공존(co-existence)이나 공생(symbiosis)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상생의 원리는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던 지난 세기의 인류사를 화합의 시기로 전환시킬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학자와 동양사상가들이 상생을 강조하고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종교와 종교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상생을 통해 화합을 이루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추세에 맞추어 그동안 산업혁명을 거쳐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 활동도 이제 변화되고 기업 상호 간의 협력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철강산업 분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나름 시장의 조성자로서 기여한 측면이 크다. 반면, 경영성과를 무리하게 강조하다 보면 법 위반이라는 신호등에 이르고 급기야 규제기관에 단속되기 일쑤이다. 이를 슬기롭게 해소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이미지 훼손은 물론 막대한 과징금 등 나중에 후회해도 걷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기업 활동을 함에 있어 늘 갑을이 존재하고 이를 달리 표현하면 대중소기업 간의 문제로 귀착된다. 따라서 당연한 과거의 관행으로 여기고 소홀히 처리하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하게 준비해야 한다. 먼 길 가려면 집안 단속부터 하고 떠나라는 말이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매사에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는 격언이 다시금 생각난다.

철강산업 분야 역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의 관건은 대중소기업 간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해 줄 수 없는 앞선 경영의 노하우 및 기술의 전수 등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생색내기에 불과한 대중소기업 상생이 아닌 상호 간 윈-윈(win-win)하는 미래지향적 상생협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밑받침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공정위 사건처리에 다소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최근 신문기사에 공정위의 결정을 기다리다가 시효가 완성되어 법원에서 다투지도 못하는 케이스가 다루어졌다. 또 어떤 사건은 수년간 조사를 하다 무혐의가 되었다는 사례 등 공정위를 향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정위에 몸담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안타까운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에 공정위 수장이 바뀌면서 처음 한 얘기가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였는데,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고 그 당시 공정위의 민원신고 건수가 폭증했다. 그 결과 신고한 중소기업들이 몇 년이나 공정위 결정을 기다려야 했다. 물리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아 내실 있는 조사가 더 어려워지고 그래서 재신고가 늘어나면서 재신고사건도 빠른 처리가 되지 않아 대중소기업 관련 사건처리가 늦어지는 행태가 다수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지적이다.

둘째는 기업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에서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이 민간 공정거래 관련 협회와 함께 공정거래 및 지속성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해당 조합원사들의 공정거래 이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실제 업무협약의 의미는 바로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탈취,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기업 간 담합으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시장참여 제한에 대응하는 등 회원사의 지속적 성장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주요한 협력분야는 ▲회원사 대상 거래대금 및 하도급 대금을 받는 법칙 및 불공정거래 예방 교육 ▲조합 회원사의 불공정거래 해소를 위한 사전진단 및 상담 ▲조합요청 시 공정거래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용역 실시 ▲그 밖에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 등이다.

대중소기업 관련 사건처리 양태인 이 두 가지 사례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감독·규제기관의 처분에 맡기기에는 사건처리 기간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점이고, 둘째는 감독·규제기관의 처분에 이르기 전에 관련 당사자가 갑을에서 기인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다.

소개된 사례 모두 일장일단이 있을 수 있지만 감독기관의 처분과 규제가 이루어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을 기다리기보다는 이러한 문제에 이르기 전에 원만하게 협력하고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자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앞에서의 상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상생의 관점에서 이제 철강산업 분야도 앞의 두 가지 사례를 이웃집 먼 산의 불구경하듯 하면 아니 되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위기감 속에 보다 냉정하고 치밀하게 성찰함으로써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맞게 이를 개선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또한, 감독·규제기관의 감시와 더불어 갑을로 대표되는 대중소기업이 언제라도 제약 없이 상담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여 향후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모범사례로 승화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상생의 주체이자 기업 활동의 중심인 대중소기업과 소위 상생의 심판관이라고 불리는 감독·규제기관으로서의 정부가 각자 자기 영역에서 상호 삼위일체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먼저, 대기업은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시책에 더하여 이를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중소기업인 협력업체의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업성장에 더욱 큰 이익이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과감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을 갑을문제의 상대방으로만 여기지 않고 진정한 상생의 동반자로 삼고 협력을 통하여 경영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창의적이고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다만, 대중소기업 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성과공유제에 더하여 협력이익공유제 등의 도입은 상호 간에 열린 마음, 트인 발상으로 내실 있는 대화를 통해 대타협의 전기를 모색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으로 정부는 각 부처를 통해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가일층 속도를 내어야 한다. 현재 우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업체에게는 공정위 차원에서 벌점 감점 및 서면실태조사 면제를 해 주고 있다. 금융위는 우대보증 대상기업으로 선정하여 신용등급 상향과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있고, 국토교통부는 시공능력평가 또는 공공공사 발주 시 우대를 하며, 조달청은 정부조달 입찰 심사 시 가점을 부여해 주고 있다.

각 부처의 지원과 더불어 대중소기업과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대중소상생협력촉진법’에 따라 우수기업을 선정하고 지원해 주고 있지만 분발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가령 기업 입장에서 세무조사 면제 등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는 전후사정을 충분하게 감안하여 이를 더욱 발전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철강산업 전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부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삼위일체적 노력이 확산되고 상생의 분위기가 기업 활동 전반에 충만해질 때 앞에서 살펴 본 감독·규제기관의 사건처리에 소요되는 기간의 벽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소통과 협력을 통한 합리적인 협력구제가 활성화 되고, 더불어 발전하는 대화합의 상생문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믿는다.



[최영수 약력]
현, 법무법인 서정 고문

전, 법무법인 큰솔 고문
전, 공정위 규제개혁단장
전, 서울사무소 제조하도급과장(건설용역, 가맹사업 포함) 부이사관 대우
전, 부산사무소 소장
전, 대전사무소 소장
전, 세종연구소(국가전략과정) 파견
전, 대구사무소 소장

저작권자 © 스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