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경영연구원 유승록 자문위원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 새로운 숙제를 던지다

지난 3월 15일 한국은행은 2018년 1인당 국민소득(GNI)이 2만 달러를 달성한지 12년 만에 3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독일이 4년, 미국과 호주가 9년이 걸린데 비하여 다소 오랜 기간이 걸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견디기 힘든 거센 파도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름대로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은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긴 소위 30-50 클럽에 미국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7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지난 50년 이상 그렇게도 바라던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이다.

한국은 1963년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90년대 중반까지 거침이 없는 성장세를 구가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하였고,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발정책이 시작된 1963년에도 100달러에 머물렀다. 광복이후 15년 동안이나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소위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가 모든 국민, 민초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고 정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기였고, 입고 자는 문제는 일종의 사치에 가까웠다. 당시 정부를 위시한 모든 국민들에게 선진국이라는 말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 딴 세상의 이야기였다. 저개발국, 개도국, 선진국이라는 구분이 사실 어떠한 의미도 없었던 시기였다.



단지 먹는 문제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였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정부나 국민들이 오늘과 같은 성과를 기대나 했겠는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이고,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고 기술도 돈도 없는 더구나 남북으로 갈라져서 항상 북의 침략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선진국이라는 말이 어떻게 우리에게 가당하기나 한 말이었겠는가?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여겼었고, 우리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한국 경제는 1980년 정치적 급변사태와 2차 오일쇼크,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차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다. 그렇다고 성장의 길을 멈춘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보다 자원도 훨씬 많고 면적도 훨씬 큰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도 60년대 이후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여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기적이라 할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 방만한 경제운영과 무리한 외환 차입으로 수차례의 모라토리엄 선언,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우는 불명예도 얻었다.

브라질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소위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라 일컬어지는 촉망받는 국가의 반열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라는 파고를 결국 넘지 못했다. 현재는 여전히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준에 불과한 중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한 때 한국의 경제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대만은 이제 거꾸로 한국을 배우는 입장으로 변했다.

태국은 1980년대 중반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10년간 9%대의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였으나, 방만한 경제운영으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국가로 전락하여 현재는 1인당 국민소득이 약 7천 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은 이제 경제발전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세계의 가장 모범이 된, 개도국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10년 전부터 한국의 경제 발전은 미국 주요 대학에서 정규과정으로 편성되어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지고 대내외에 자랑할 만한 일이다.

만약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었으면 다양한 자축 행사가 여러 곳에서 성대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정부는 경제계와 산업계를 모아 놓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을 것이고, 언론들은 앞다투어 보도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는 곳에도 축하하고 격려하고 다짐하는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만 들린다. 그간의 경제적 성과와 노고보다는 아마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서 등한시되어 왔던 일들이 누적되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고는 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소득을 제외하면 1인당 가계총가처분소득은 1만7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소득은 훨씬 낮다는 것이다. 또한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2분기 소득 5분위배율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5.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 소득보다 5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얘기이다. 양적인 성장만을 우선시하다 보니 간과되었던 문제들이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청년실업문제는 더욱 골칫거리다. 2019년 2월 현재 우리나라의 15∼29세 청년실업률은 9.5%, 잠재실업자를 포함한 확장실업률은 24.4%에 이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 4.7%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이고, 일본의 청년실업률 4.1%에 비해서도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더하여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진 저출산 문제는 미래 한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핵심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성장의 이면에서 등한시 되어 왔던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3만 달러 달성이라는 축제를 즐길 수만은 없는 것이 한국 경제의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 등 일부 유럽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3만 달러에 도달했다가 다시 2만 달러로 회귀하였던 것을 되새겨 볼 일이다.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문제는 심각해진다.

3만 달러 시대에도 제조업이 핵심이다

이러한 거시적인 문제와 함께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3만 달러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들의 어려움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실 한국 경제를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탈출시키고, 2만 달러, 3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한 핵심 산업은 바로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전통 제조업이다.

과연 이러한 주력 산업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러한 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위기가 계속된다면 4만 달러를 과연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말도 들린다.

4만 달러가 아니라 2만 달러 시대로 회귀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장의 그늘에 가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도 시급히 해결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던 주력 산업을 다시 살리지 않고는 더 이상의 진전이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20년간 지속된 일본의 경기 침체, 소위 ‘잃어버린 20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1988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지 4년만인1992년에 3만 달러에 도달했고, 그리고 3년만인 1995년에 4만 달러를 돌파한 후 1996년에는 4만 3천 달러로 과거 최고를 기록하였다.

1985년 미국과 일본 간에 이루어진 플라자합의로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이 달러 환산 국민소득의 급등을 유발한 주요한 요인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일본 제조업의 높은 국제경쟁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년 동안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2017년 현재에도 1996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부동산버블의 붕괴에 따른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일본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하락, 구조조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주력 제조업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면 경기 침체 기간이 20년까지나 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력 제조업은 일단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침체하게 되지만 경쟁력 회복은 인력 구조조정 등 무수한 고통과 장시간을 요구한다. 결코 예전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도 많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한 번 뺏긴 왕좌를 되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때 세계를 군림했던 일본 전자산업의 몰락은 산업이 한 번 경쟁력을 잃으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하던 소니의 몰락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1946년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작은 공장으로 출발한 소니는 일본의 ‘모노즈쿠리(제조업)’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20세기를 제패한 일본 전자제품의 상징으로 군림하여 왔다.

세계 최초로 포터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1957년)하였고, 1980년대 워크맨의 신화는 세계 모든 기업들을 소니 공부에 매달리도록 했다. 1990년대 미국인들이 TV를 구매할 때는 TV 제품을 소니 제품과 그 이외의 제품으로 분류했을 정도였고, 미국 시장의 절반 이상을 소니가 휩쓸었다. 사실 일본의 소니가 아니라 ‘세계의 소니’로서 사랑받았다. 한국에서도 당시 소니 TV는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러한 소니의 아성은 1990년대 말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여 세계 전자산업에 소위 디지털혁명이 불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소니 아성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음악시장에서 MP3가 등장하고 애플이 아이튠스를 가지고 음악시장을 지배해 나가기 시작하자 급기야 2012년에 소니는 과거 전자산업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워크맨’의 생산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TV 시장에서는 삼성, LG 가 LCD TV와 같은 평판 TV를 가지고 빠른 속도로 기존 TV 시장을 잠식해 나갔고, 한 발 늦게 진입한 소니는 점차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급기야 2008년 소니는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4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2년 소폭 흑자로 전환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2년 연속 1200억엔 이상 적자를 기록하며 몰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한 때 세계 전자업계의 ‘롤 모델’에서 ‘실패학 대명사’로 전락한 것이다. 2012년부터 사업매각, 인원삭감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소니는 소규모의 흑자로 반전하였고, 201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과거의 성과를 달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5년 4만 달러를 달성하였지만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5만 달러를 돌파하기는 커녕 3만 달러로의 회귀와 4만 달러의 재탈환이라는 지루한 반복을 계속하고 있다.

만약 소니와 같은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였다면 20년 이상 동안이나 잃어버린 세월 혹은 3만 달러의 함정에 갇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도 제조업 현실을 고려할 때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라 불리고 있는 독일은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 이후에도 일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독일이 3만 달러에 진입한 것은 일본보다 3년이 늦은 1995년이었다. 독일은 1990년 10월 환희 속에 통일을 맞이했지만 무려 1조5000억유로(약 2244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통일 비용을 치르면서 ‘라인강의 기적’에서 90년대 후반 ‘유럽의 병자’로까지 불렸던 엄청난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였다. 경제성장률은 1%를 간신히 넘었고 실업률은 10%를 오르내렸다.

그러나 2017년 현재 독일은 1인당 국민소득이 4만6천 달러로 일본에 비하여 훨씬 높고, 소위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국가로 그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제조업 기술력과 경쟁력에서 자웅을 겨루었던 두 나라가 한 나라는 부동산 버블 이후 20년간의 경제적 암흑기를 거쳐야만 했고, 다른 한 국가는 통일이라는 엄청난 재정부담이라는 심각한 경제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제조업이다. 일본은 부동산버블의 붕괴와 함께 뒤이어 일본 경제성장의 근간이었던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경제 복원력을 상실하였던 반면, 독일은 오히려 제조업을 통해 충격을 단기간에 극복하고 성장 경로를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바로 독일 제조업이 경제 복원력(resilience)의 핵심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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