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롤은 지난 1976설립 이후 주물사업을 거쳐 세계적인 압연 롤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세계 압연 롤 분야의 히든 챔피언이 되겠다’는 집념으로 이어온 38년차 경영인 민종기 사장. 압연 롤 시장의 후발주자에서 명실상부한 1등 전문기업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남다른 관심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투명하고 정직한 기업운영과 사회적 기업으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영철학은 기업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압연 롤 사업에서 이룬 눈부신 성과는 물론, 화성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지역 경영인들의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는 받고 있는 민종기 사장을 만나 그간의 여정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케이티롤(주) 민종기 대표이사
▲ 케이티롤(주) 민종기 대표이사
Q> 평소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각별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업관을 듣고 싶다.

A> 경기침체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각자의 형편을 떠나 기업인들의 경영 마인드가 가난해진 것 같다. 기업의 본질적 경영가치가 이익실현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수익의 극대화만 강조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기업 역시 사회 구성의 일원이다. 크고 작은 기업의 성장이 사회의 지원을 받은 만큼, 그것을 이웃과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봉사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주변 곳곳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 보다 큰 틀의 기업관을 갖고 사회적 기업으로서 가치와 역할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지켜가려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기업관을 갖는 것이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화성상공회의소 회장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러한 기업 가치관을 회원사들과 공유하고 기업인들의 역량을 키우는 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Q> 많은 철강재 가운데 롤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A> 처음부터 롤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형님의 사업을 도우면서 금속업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삼아, 1976년 ‘신양주공’이라는 상호로 주물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생소했던 주물 사업을 시작하고 아령 같은 단순한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주물 사업에 뛰어든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체력은 곧 국력이다" 는 슬로건 아래 아령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군(軍) 관계자들이 아령을 대량 납품 받기 위해 회사를 찾아올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업을 하면서 그때가 가장 신바람 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령 판매의 호시절을 기반으로 기계 부품용 주물제품 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펌프용 케이스나 모터 케이스, 플라스틱 사출기 등의 기계용 주물제품을 만들면서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특화된 고급제품 생산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여기에는 당시 주물 기술을 가진 몇몇 현장 근로자들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던 상황에서 체계적인 기술축적과 표준화된 매뉴얼 갖춘 사업변화의 필요성도 중요한 동기가 됐다.

그렇게 해서 뛰어든 것이 롤 사업이었다. 먼저 엘리트 엔지니어 영입과 적극적인 설비투자가 관건이었다. 더욱이 후발업체로서 신속히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선발업체들의 견제와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자리를 잡는 시간이 무엇보다 힘겨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Q> 국내외 대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도 세계적인 롤 공급사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A> 롤 사업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회사를 끌고 왔지만 수요처들의 평가는 냉철했다. 압연 롤은 뜨거운 열기 속에 철과 철이 맞닿는 제품이기 때문에 그 수명이 길지 못하다. ´얼마나 열에 잘 견디고 마모가 덜 되느냐´가 품질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가장 먼저는 탄탄한 기술력과 품질을 갖추는 일이었다. 국내 동종기업은 물론 일본 전문기업의 퇴직 엔지니어 등 전문기술진을 영입해 기본기를 안정시키고 독자 기술력으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돌이켜보면, 때론 무모하기까지 했던 도전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모른다.

기술력을 축적하고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후발업체로서의 차별화 요소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동종업계 처음으로 금속밴드 포장을 시작하는 등 제품과 포장, 물류, 각종 사후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롤 사업에 대한 신념은 누구보다 강하지 않았나 싶다. 소형 롤을 중심으로 시작한 사업은 주력분야를 조금씩 넓혀가는 식으로 차근차근 키워갔고, 봉형강과 판재류를 아우르는 중대형 롤까지 생산이 가능해 졌다.

그동안 롤 사업에 혼신의 힘을 쏟은 결과로, 국내 철강업계는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품질과 경쟁력을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압연 롤 전문기업으로 평가 받게 됐다.

Q> 한국 철강산업의 양적 팽창의 시대가 끝난 것 같다. 수요 부진은 케이티롤에게도 부담스러운 과제가 될 것 같은데, 케이티롤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A> 철을 만드는 용광로는 거짓이 없다. 좋은 원료를 넣으면 좋은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케이티 롤은 그렇게 당연한 원칙을 지켜가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핵심과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로 잡고 있다.

관리와 기술 모두가 투명하고 분명해야 한다. 생산현장에서는 원료의 투입부터 최종 제품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과 기술이 투명해야 한다. 이는 곧 표준화와 매뉴얼화 되는 의미를 말한다. 케이티롤이 각종 기술ㆍ품질 인증을 많이 받게 된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영업에 있어서도 투명해야 한다. 회사를 운영해오면서 비자금이나 부당한 내부거래 등의 문제에 무엇보다 철저했다. 한번 지출의 용도가 바뀌면 걷잡을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저희 회사가 작은 규모임에도 증권시장에 상장하게 된 이유도 투명한 경영에 대한 평가가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케이티롤의 출발은 ´좋은 롤을 공급해 철강 산업발전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철강 산업의 발전은 국가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소신은 지금도 변함없다.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다른 업종으로 눈을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무는 자라지 않으면 죽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티롤은 생존과 성장을 동일선에 놓고 미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계시는 예산공장 투자도 마찬가지다.

예산 신공장은 부지를 제외하고 설비투자에만 약 3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향후 케이티롤의 주력 생산거점으로 거듭날 것이다. 가장 큰 개선요소는 일의 능률과 효율성이다. 지게차로 옮기던 것이 크레인으로 대체되고, 모든 공정에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이전과 차원이 다른 생산현장과 비용절감의 경쟁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주물 생산에 특화된 공장이라는 점이다. 설계단계부터 각종 설비와 생산라인은 물론, 환경관련 설비 등을 최적화 했다.

철강 경기침체와 맞물린 롤 소비감소 상황에서 신규투자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없지 않은 줄 안다. 하지만 예산 신공장은 단순한 사업의 확장이기 보다, 기존 사업의 안정과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는 의미가 크다. 기존 공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집중 보완했으며 순차적으로 설비를 이전하는 흐름을 계획하고 있다. 케이티롤은 예산 신공장을 기반으로한 롤 사업의 새로운 경쟁력을 시장과 공유하게 될 것으로 자신한다.

Q> 기업은 위기의 순간을 맞곤 한다. 케이티롤이 겪은 위기는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돌파했나?

A> 70년대 오일쇼크 때는 먹고 살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열심히 땀 흘리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었다. 장사 수준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기업의 외형과 체계를 잡아갔다.

그러던 중에 90년대 들어서 모두가 기억할 IMF는 저희 회사에도 큰 위기였다. 주력 거래처 14곳 가운데 9개가 부도가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행히, 그 당시 저희 회사의 부채비율이 매우 낮은 상황이었던 것은 큰 힘이 됐다. IMF 이전에 차곡차곡 쌓았던 회사의 자산이 저수탱크 역할을 하면서 위기극복을 가능케 했다.

´어려울수록 신용을 지켜야한다´는 소신으로 어음결제일 하루 전에 대금을 지급하며 거래처와 신뢰를 다졌다. 그 뒤로 현금결제를 원칙으로 삼았다. 현금결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때론 이자비용을 치러야 했지만, 현금결제로 신용은 좋아졌고 현금결제를 이유로 거래처에서 뜻하지 않은 할인까지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할인금액이 이자비용 보다 많은 이득이 됐고 거래처와 돈독해진 신용은 더 큰 자산으로 남게 됐다.

가장 큰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회사의 규모는 커졌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철강 시황악화로 국내외 시장 모두에서 돌파구를 찾기 힘든 상황이 연출됐다. 이후 여타 철강 품목과 마찬가지로 큰 흐름의 하향국면이 지속되면서 매출정체와 수익악화의 부담이 장기화되고 있다. 불황이 길어진 만큼 이를 타개할 고민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Q> 통상 한국산 제품을 두고 일본에는 품질이 열위고, 중국산에 비해선 가격 경쟁력에서 열위라고들 한다. 한ㆍ중ㆍ일 롤의 경쟁구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양적 성장에 집중해오던 중국 철강 산업은 지난 2010년 이후 기술과 질적인 측면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예상했던 롤 산업의 발전 흐름을 무섭게 앞당기는 것으로 보고 저 역시 크게 놀랐다.

한·중·일 3국에서 생산되는 롤의 품질 편차는 크게 줄었다. 케이티롤은 기술적으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에 18곳의 거래처를 둘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기술과 품질 면에서 일본 제품의 95% 수준까지 따라 붙었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일본산 제품 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품목이 있을 정도다.

부담스러운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중국이 거의 한국 제품 수준까지 쫒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제품이 한국산 품질에 거의 근접한 것은 맞지만 아직 채우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다. 최신 설비보다 세밀한 관리 테크닉과 관리자의 마인드가 최종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ㆍ중ㆍ일 3국의 롤 산업은 이제 일방적인 품질과 기술력의 차이를 따지기 힘든 평준화 상황에 놓여 있다. 나머지는 각국 수요처들의 마인드 문제로 볼 수 있겠다. 일본의 철강업계 역시 수익확보가 절박한 입장이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산 롤 구매 비중을 20% 이상 늘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일본 수출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만 부러운 면이기도 하다.

생산원가 비중이 높은 롤의 특성상, 정상적인 중국 제품이 한국산 가격대비 10% 이상 싸게 팔기 어렵다. 그럼에도, 대부분 국영기업인 중국 롤 업체들은 수익성보다 가동률이나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공격적인 저가정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수출보조금 까지 얹어져 한국산 대비 30% 가깝게 낮은 수준의 가격파괴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철강업체들은 그것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산 롤에 대해 감당하기 힘든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롤 산업은 생산원가 수준까지 떨어진 시세로 고전하고 있다. 한국의 롤 산업이 고사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중국 업체들은 공급가격을 크게 올릴 게 분명하다.

한국 철강 산업의 생존을 위해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정작 중국산 저가 롤 사용 비중을 늘리는 모순은 되짚어 볼 만한 일이다. 철강 산업 전체적으로 공존과 공생의 책임감이나 인식부족이 아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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