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가공업계가 2년여 만에 단가인상에 사활을 걸었다. 대폭 오르는 최저임금을 비롯한 부대비용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뤄오던 가공단가 인상에 대한 공론이 본격화된 셈이다. 회신기한을 정한 단가인상 요청에 건설사나 제강사 등 거래처들이 어떻게 호응할지 귀추를 주목하게 됐다. 새롭게 점화된 가공단가 인상에 대한 배경과 쟁점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 철근 가공단가 인상 ‘사활 건 승부’

철근 가공업계는 10월 20일 단가인상 공문을 건설사와 제강사, 공사현장, 관련단체 등에 발송했다. 8월 이사회를 시작으로, 9월 간담회, 10월 결의대회 등으로 다져온 단가인상 입장을 공식화 한 것이다.

철근 가공업계는 내년 1월 1일 이후 납품물량에 대해 톤당 8,080원의 단가인상에 나설 방침이다. 2017년과 2018년의 최저임금 인상분(6,122원)과 물가상승분(965원), 운반비 상승분(995원) 등을 합산한 내용이다.


이번 인상폭이 반영될 경우, ▲건축공사(로스율 3% 조건) SD400~500 4만5,000원→5만3,080원 / SD500~600 4만8,000원→5만6,080원 ▲토목공사(로스율 3~6%) 5만1,000원→5만9,080원으로 각각 오른다.

철근 가공업계는 각 거래처에 전달한 공문에서 “원활한 작업수행과 가공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단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수년간 정체됐던 철근 가공단가가 2016년 5월 일부 인상되면서 경영난이 다소 개선되었으나, 2017년도 최저임금과 물가상승을 반영한 단가인상 요청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8년도 최저임금이 16.4%로 대폭 인상되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철근 가공업계는 이번 단가인상 요청의 회신기한을 오는 11월 10일까지로 못 밖은 상태다.

■ 최저임금 수직인상, “철근가공 원가상승 폭탄”

철근 가공단가(원가)의 구성은 ‘인건비’·‘공장유지·관리비’·‘운송비’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0% 수준으로 절대적이다. 철근 가공업에서 인건비는 제조업의 원자재 같은 무게감으로 비교될 만 하다. 비교대상이 철근 제강사라면, 철스크랩과 비슷한 원가비중이라 실감할 수 있다.

더욱이, 할증수당이 적용되는 야간작업과 주말작업이 일상화 되어있는 철근 가공업의 현실에서 인건비는 무엇보다 큰 변수이자, 부담이다.

정부는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상태다. 16.4% 인상이 확정된 2018년을 시작으로, 3년 뒤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방침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9년(8,765원) 16.4%, 2020년 14.1%의 인상률을 거쳐 최저시급 1만원 도달을 예상하고 있다.

국회예산처 자료
▲ 국회예산처 자료

정부가 공언한 최저임금 1만원은 철근 가공업계 입장에선 원가상승 폭탄이나 다름없다. 절대적인 원가를 차지하는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위기를 직면하게 됐다. 철근 가공업계는 3년 뒤 1만원은 물론, 당장 내년의 임금인상도 답을 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철근 가공업계는 높은 인건비 부담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장직의 절대인원을 외국인근로자에 의지하는 상황인데다, 최저임금을 빠듯하게 맞추는 인건비로 열악한 원가구조를 버티고 있다. 마지노선인 최저임금의 인상폭이 그대로 원가상승 부담으로 체감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3년 만에 54.6%가 인상되는 최저임금 인상 계획. 철근 가공업계가 2017년의 최저임금 인상분도 반영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향후 3년 동안 철근 가공업계가 감당해야 할 최저임금 인상률은 65.8%(2017년~2020년)에 달한다.

■ 다시 맞은 철근가공 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원가에서 50%~60%를 차지하는 철근가공의 인건비. 철근 가공업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3년 만에 50%~60%의 직접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수 있는 업종이 있을까. 다른 원가요소를 아무리 쥐어짠다 해도, 엄청난 원가상승 부담을 만회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새롭게 불거진 철근 가공단가 인상에 대한 문제적 관점도 달라질 수 있다.

철근 가공시장은 최근 년도 들어 급격한 성장을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철근 수요 1,162만톤 가운데 43.0%에 해당하는 500만톤이 가공 실수요 시장으로 평가된다. 1,200만톤 이상의 사상 최대 철근 수요가 유력한 올 한해는 가공 또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1월~9월 국내 철근 수요는 921만톤으로 전년 동기(853만톤) 대비 8.0%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다.

스틸데일리DB
▲ 스틸데일리DB

본격적인 철근 호황이 연출됐던 최근 3년의 수요증가를 가공 포함 실수요가 주도했다는 점. 올해를 기점으로 가공철근 수요가 비(非)가공 수요를 역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가공철근의 대세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철근을 사고파는 거래에서 ‘가공업’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의미로 공감할 수 있다.

철근 실수요 시장의 전제조건이 된 가공의 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가공업계의 위기는 해당 업계는 물론, 건설사와 철근 제강사 등 이해관계 업계의 위기일 수 있다는 인식이다. 철근 가공의 품질저하나 납품차질 등 원활치 못한 수요대응의 문제가 결국 공급처와 수요처 모두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복되는 가공단가 논쟁..경쟁보다 성숙도 문제"

철근 가공시장은 급격한 성장에 비해 성숙도가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크다. 철근 가공시장에서 ‘원가’와 ‘단가’의 개념이 모호한 단적인 문제를 되짚어보자. 원가와 (거래)단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그만큼 철근 가공산업의 부가가치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가공업의 부가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철근 가공단가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구조적인 문제가 실랑이로 반복된다. 건설사는 철근 가공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회피점을 찾아왔다. 철근 제강사는 가공부문을 적자 수주해 웃돈을 얹어주고 있으니, 나 역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원청인 건설사가 인정해지 주지 않으면 자체적인 가공단가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되풀이 해왔다.

가공을 포함한 턴키방식 철근거래의 수혜(구매편의, 비용절감, 리스크 축소 등)를 대부분 건설사가 누리고 있는 구조적 현실. 판매를 위한 고육책으로 가공 턴키물량을 수주하고 있는 제강사는 임가공 방식으로 해결하는 철근가공을 저가 수주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철근 가공업계의 적극적인 자구책도 등장하고 있다. 객관적인 가공단가를 정착하고자 올해부터 시작한 ‘철근가공표준단가 적용지침’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철근 가공업종 표준계약서’ 제정 등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단가계약을 수용한 철근 가공업계의 무분별한 수주에 대한 자성이 더 중요하다. 표준단가나 표준계약서 모두 철근 가공업계의 적극적인 개선의지가 없다면 어떠한 기대도 가질 수 없는 대안이다.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에서 가격(단가)은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 경쟁의 환경에 왜곡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원가변동이나 수급상황 등 여타의 가격결정 요소보다, 유독 ‘경쟁’이라는 잣대가 엄격하게 적용되어온 철근 가공업계의 현실을 돌아 볼 만 하다.

철근 가공과 단가의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는 많은 공론이 필요하다. 중요한 출발점은 ‘감당할 수 없는, 예정된 원가상승을 적자생존식 경쟁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일방적 관점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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