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철강산업연구소 유승록 부소장
▲ S&S 철강산업연구소 유승록 부소장
금년은 실질적인 低탄소시대의 원년이다. 신기후 체제인 파리협정이 시행되어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향후 10년간 1억 5천5백만 톤의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만 한다. 이 양은 기준년도인 2017년 철강산업 전체가 배출한 1억 3백만 톤의 1.5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 정부도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여 시행 중에 있다. 시장 기능을 통해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여 나가도록 한 것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두 차례 시험적으로 시행하였고, 금년부터는 본격적인 3차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다. 금번 3차 계획은 실질적인 탄소배출 감축이 이루어지도록 무상할당 비율을 줄이고 대신 유상할당을 늘렸다.

그리고 감축설비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하는 Benchmark 방식의 할당 비율을 60%로 크게 상향하였다. 금융기관과 개인들도 배출권을 사고 팔수 있도록 함으로써 배출권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이러한 다양한 조치들로 인해서 한국에도 저탄소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들과 배출량 감축에 성공하지 못한 기업들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저탄소시대에 철강업체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사실 6년간의 1, 2차 배출권거래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철강산업의 탄소배출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2015년 103백만 톤에 불과하였던 탄소배출량이 2019년에는 121백만 톤으로 증가하였다. 포스코의 배출량은 같은 기간 73백만 톤에서 81백만 톤으로, 현대제철은 20백만 톤에서 30백만 톤으로 증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탄소배출부채규모가 2019년 현대제철은 1,143억원으로 등록된 기업 중 1위, 포스코는 510억원으로 2위를 기록하였다. 앞으로 엄격한 배출권 감축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철강업계는 보다 적극적인 배출 감축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경영상의 손실과 생존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우선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을 가지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低탄소경제로의 이행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철강업계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파리협정으로 모든 국가들은 기존에 제출한 감축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도 이에 맞추어 제도와 규정을 보다 강화하고 엄격하게 시행할 수밖에 없다. 왜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도입하여 기업들에게 부담을 주고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가 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탄소배출을 줄인다면 새로운 이익원으로 활용될 수 있고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철강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저감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철광석보다는 고철의 사용 비중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 방식이 전로에서의 고철 장입량을 최대한 증대시키고 고로에서 생산되는 용선의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이와 관련된 기술 개발이 뒤 따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탄소배출이 적은 전기로의 비중도 점차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기로를 통한 고급 판재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기존에 있었던 전기로 판재류 설비들은 고급 고철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현재 모두 폐쇄 혹은 조업이 중단된 상태이다. 현재와 같은 낙후된 국내 고철산업으로는 전기로 판재류 생산이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고, 그 만큼 탄소배출 감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철강업계가 공동으로 나서서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크게 낙후되어 있는 고철산업의 고도화를 조속히 추진하여 전기로 판재류 생산 기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고로가스, 코크스가스, 제강가스 등 제선과 제강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부생가스의 재활용 방안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강구해야 할 것이다. 탄소포집기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포스코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수소환원제철법 개발과 수소생산시설 확충도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저탄소시대가 빠르게 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철강재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증가할 것이다. 현재에는 생산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가진 기능성 철강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전기차, 수소차의 대중화가 빨라질 것이고, 제로에너지 건축이라는 신개념의 건축물도 증가할 것이다. 고효율 전기강판, 고강도 강판, 고압용기 등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고, 에너지 손실이 적은 새로운 강재에 대한 요구도 나타날 것이다. 수요가들의 강재에 특성에 대한 니즈가 어떻게 변화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수요업계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관련 기술 및 제품 개발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철강협회 차원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배출권거래제에 등록되어 있는 철강업체 수는 7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포스코, 현대제철 등 상위의 몇 개 업체를 제외하고는 탄소배출 저감 설비와 기술이 낙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철강사들의 저감 기술이 고도화되어야 진정한 저탄소시대로 나아갈 수 있고, 산업전체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수한 저감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에 기술을 전수하여 실질적인 배출 감소가 이루어졌을 경우 기술을 제공한 기업에게 배출 감축을 실현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일종의 ‘탄소바우처’ 제도를 정부에 건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미약한 국내 배출권거래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한중일 3국이 동시에 참여하는 ‘동북아 배출권 거래시장’의 창설을 건의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시장 규모와 거래 참여자 수를 획기적으로 확대시켜 기업들이 언제나 시장가격으로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의 배출권거래제 시장은 시장 규모가 작고 참여자 수 또한 적어 상당기간 동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도 EU의 탄소국경조정세 논의에 적극 동참할 것을 정부에 건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WTO 무차별원칙을 고려할 경우 EU가 추진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세는 도입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파리협정에 가입한 국가가 200개에 이르고 있고, 미국도 바이든 정부 들어 파리협정에 재가입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논의가 의외로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탄소국경조정세 논의에 참여하여 탄소 고배출 국가의 철강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철강업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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