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산강철이 등장하면서 포스코 스테인리스 열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청산강철의 높은 원가경쟁력을 인정하고 선제적으로 시장을 내어주면서 협상하고 있다. 청산강철의 높은 열연 가격경쟁력을 이용하여 냉연 등 하공정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선도기업인 포스코는 청산강철과 협상보다 강력한 수입방어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청산강철과 길산그룹이 공동으로 추진했던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공장 건설도 저지하고 있다. 이제 더 적극적으로 스테인리스 열연수입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에 스테인리스 수입규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는 국내 스테인리스 열연시장에 대한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쉽게 포기하기 싫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의 위기에 선도기업인 포스코가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테인리스 열연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포스코가 정부의 수입규제 보호까지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포스코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도 스테인리스 열연시장에서 수익을 제대로 창출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계속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스테인리스 열연 수입을 규제하면 열연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포스코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국내 스테인리스 열연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수입을 규제하면 일반적으로 철강재 가격이 상승하고 철강관련 많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일시적으로 좋아진다고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포스코산 열연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 등 하공정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의 포스코 열연에만 의존해야 하는 냉연 등 하공정은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하공정에 있는 철강사 입장에서는 포스코에서 스테인리스 열연을 구입하기보다 열연을 수입하여 냉연을 만들거나 아예 냉연을 최종재로 수입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열연 수입규제가 다급해진 포스코 입장에서는 열연수입이 규제되더라도 국내 고객사에게 국제가격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열연을 공급하겠다고 말하지만 독점기업의 이러한 행태를 신뢰하는 고객사는 많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수입규제를 통해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의 사양화 속도를 지연시키고, 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수입규제를 통한 일시적인 산업보호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포스코 스테인리스 열연의 가격경쟁력을 청산강철 수준으로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열연 수입규제로 포스코가 스테인리스 열연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강화한다면 스테인리스 냉연업계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공정이 어려워지면 결국 상공정에 있는 포스코 스테인리스 열연도 설자리가 좁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경쟁구도를 바로잡고 냉연 등 하공정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의 미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수입규제로 단기적으로 산업을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독점적 시장구조를 더 악화시키는 수입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정부의 수입규제 정책을 통해 선도기업이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더 강화하려고 한다면 이 수입규제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수입규제라는 산업정책의 최종목표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어느 하나를 포기하기는 것은 어렵다. 수입규제를 통해 단기적으로 산업을 위기에서 구하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동시에 하여야 할 것이다.
수입규제 대상 품목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열연을 규제 할 것이지 아니면 냉연을 규제 할 것인지? 아니면 열연과 냉연 모두 수입규제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 스테인리스 위기극복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열연과 냉연 모두 강하게 수입규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을 생각하면 무조건 보호만이 해법이 아니다.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보면 수요산업에 가까운 기술집약적인 하공정의 스테인리스 냉연이 상공정의 열연보다 더 중요한 산업이다. 따라서 열연보다 냉연 수입규제가 더 중요하다. 열연의 경우 먼저 수입규제로 산업을 위기에서 구하고, 장기적으로 수입비중을 높여 경쟁을 강화하고, 스테인리스 하공정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포스코는 수입규제를 통해 일정한 시간을 벌어 스테인리스 열연의 산업경쟁력을 청산강철 수준으로 높이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선도기업으로서 독점적 지위를 즐기기보다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만약 그런 노력 없이 포스코 열연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한다면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냉연과 하공정의 산업경쟁력이 무너지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수입규제를 한다면 가격기준으로 할 것이지 물량기준으로 할 것인지도 중요한 선택이다.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의 경우 물량과 가격을 동시에 규제하는 할당관세(quota tariff)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스테인리스 냉연의 경우는 AD 등 가격으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포스코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스테인리스 열연의 경우 가격보다는 쿼트 등 물량규제가 더 바람직하다. 스테인리스 열연의 경우 물량쿼터를 설정하고 쿼터 내에서는 비관세로 수입하고 그 외는 관세를 지불하고 수입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쿼터를 늘려 국내시장에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고율의 관세를 지불하고서라도 들어와야 할 품목은 수입되게 하는 것이다. 수입쿼터로 스테인리스 열연을 보호도 하고 단계적으로 경쟁도 하게 하자는 것이다.
포스코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은 장단기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정부나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가 있을 때 정부도 포스코 스테인리스 열연사업을 보호할 명분이 생기고, 국내 스테인리스 하공정과 수요산업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지배력이 큰 선도기업의 경우 자신이 바로 산업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포스코는 자사의 스테인리스 사업이 후퇴하면 우리나라 스테인리스 산업도 후퇴하게 된디고 주장한다. 따라서 포스코 스테인리스 열연사업은 보호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고도성장기에는 선도기업이 잘되는 것이 바로 산업이 잘되는 갈이었지만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선도기업이 잘되는 것과 산업이 잘되는 것이 괴리를 보인다. 따라서 정부 수입규제로 그 혜택이 지나치게 특정 선도기업으로 쏠리거나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 산업정책은 특정 선도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업을 위한 것이다. 산업정책의 최종목표는 선도기업이 아니라 산업 전체가 잘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후퇴하면서 정부에 수입규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번 스테인리스 열연 수입규제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다음 수입규제에도 유용한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 산업정책은 개별 철강사 경영전략보다 고려하여야할 변수가 많다. 따라서 더 광범위한 토론을 통해 우리 스스로 수입규제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 성공적인 수입규제를 위해서는 정부가 철강산업을 바라보는 큰 시각과 더 정교한 산업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서정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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