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시회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사고자 하는 바이어들이 만나는 장이다. 오늘날 전문 무역전시회는 단순히 제품 홍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업, 제품 테스팅, 트렌드와 정보 파악, 네트워킹 구축 등 비즈니스의 종합 플랫폼이다. 이에 발맞춰 전시산업 선도 국가들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진화된 홍보, 마케팅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 세계 유망시장까지 전시회 개최를 확대하는 중이다. 한국 전시산업 규모는 약 3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과 10년 사이에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개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이번호에는 국내 최고의 해외 전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라인메쎄(주) 박정미 대표를 만나 전시산업이 수출 등 기업 마케팅 측면에서 어떤 효과가 있고, 한국 전시산업이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지 들어봤다. [편집자주]

라인메쎄(주) 박정미 대표
▲ 라인메쎄(주) 박정미 대표
독일은 세계 유명전시회의 60%가 집중되어 전시산업의 메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의 전시산업이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는지 그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전시산업의 태동 배경이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전후 폐허가 된 서독의 빠른 경제부흥을 위해 미국은 ‘마샬 플랜(Marshall Plan)’에 의한 지원을 했고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의 영업과 해외마케팅을 돕기 위해 전시장 건립, 주최 등에 적극 사용되었다.

특히 와이어, 튜브, 주조, 야금 등 세계적인 금속전시회가 많이 개최되는 뒤셀도르프는 라인-루르 공업지역의 핵심으로 석탄과 철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우리에게 ‘라인강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이 지역은 전부터 철강 및 기계 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독일 상위 100대 기업 중 37개사가 있을 정도다. 또한 70년도 한국 광부가 파견된 곳도 역시 이 지역이다. 따라서 이 주변에 세계적인 전시장이 있는 건 사실 놀라울 일은 아니다.

Q> 라인메쎄(주)는 어떤 회사입니까?

A> 라인강을 끼고 뒤셀도르프와 쾰른에 2개의 큰 전시장이 있는데, 라인메쎄는 이 2개 전시장의 한국대표부입니다. 이곳에서는 100여개의 전시회가 열립니다. 뒤셀도르프 전시장에서는 주로 중공업 관련 전시회가 다수 개최됩니다. 쾰른은 가구, 식품, 게임 등 소비재 전시회가 많습니다. 이 두 전시장에서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B2B전시회들이 많은데 50년이 넘은 전시회는 부지기수고 100년이 넘는 전시회도 상당수 됩니다.

라인메쎄는 단순히 전시회 부스를 임차해 실적을 올리는 회사는 아닙니다. 참가사 유치, 관리는 물론이고 현장 지원까지 전시회에 관하여 ‘토탈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문객 프로모션, 미디어 홍보 등 독일 전시회 주최자를 대신해 한국에서 업무를 하는 회사입니다.

Q>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종사하게 되셨습니까?

A> 큰 언니가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언니의 제안에 따라 중·고등학교를 독일에서 다녔습니다. 대학 졸업 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잠시 일을 했는데 우연히 행사장에서 주한 독일상공회의소 소장을 만나 올림픽 종료 후 사무보조원직을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요 업무는 독일에서 파견 나온 직원과 남성들이 하고 여직원의 업무는 사무 보조 수준이던 시대였어요.

그러나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업무태도를 눈여겨 본 독일 임원이 전시회 업무를 맡겨보자고 추천을 했고, 89년 5월 첫 여성 과장 승진과 함께 전시업무 전담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2005년 그 팀이 라인메쎄(주)라는 법인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반대도 심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A> 그랬죠. 당시 제 나이가 23세였는데, 주변에서 ‘여자다, 어리다, 경험이 없다’ 등 여러 이유로 반대가 많았습니다. 방법은 노력과 실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여자라서 불이익이 많았을 법 하지만 오히려 혜택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는 성취감도 커서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Q> 전시회도 영역이 다양합니다. 무엇에 중점을 두고 계시는요?

A> 89년 처음으로 독일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대한 전시 규모와 색다른 바이어 발굴, 비즈니스 방식을 보고 이것이 우리 기업들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초기에는 국내에서 참가 업체는커녕 관람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관람객부터 유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수출이라고 하면 제품을 들고 바이어를 직접 찾아가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 선진국들은 이렇게 전문무역전시회에서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해외영업하고 있었고 실제로 독일은 지금도 수출의 80%를 전시장에서 수주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마케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참관단을 모집하여 전시기간 내내 함께 다니면서 인식의 변화에 주력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전시회를 직접 보고 자극을 받아야 참가도 고려하겠다 생각했죠. 결과적으로 이런 접근은 상당히 검증되었습니다. 저와 함께 전시장을 다녀온 제조사들이 전시회 참가에 대해서 문의를 하기 시작했고 30년이 지난 지금 연간 1천 개사를 해외전시회에 참가시키고 있습니다.


Q> 3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전문가로서, 대표님이 보시기에 ‘전시회’란 무엇일까요?

A> 한마디로 해당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보여주는 거울이자 연결고리’입니다. 그리고 수출을 진행중이거나 현재 고려중인 기업들에게 전시회 참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Q> 독일은 세계 최고로 전시산업이 발전한 국가입니다. 독일은 어떻게 전시산업이 발전했는지, 국내 전시회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요?

A> 독일은 긴 전시회 역사만큼이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누적되어 오늘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참가사·방문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무역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국내 전시산업 역사는 비교적 짧습니다. 한국 기업의 전시참가가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입니다. 지금 국내 전시 규모는 연 3조5,000억원대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문이 많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인 확대 노력으로 전시회 개최 숫자는 독일보다 많습니다만 대부분 유사전시회입니다. 독일은 전시 주최사끼리 ‘유사 전시회는 하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습니다. 또 개최주기는 산업의 개발 주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개발주기가 빠른 패션, IT, 전자, 가구 등 소비재의 경우 통상 매년 개최되고, 중공업과 같은 투자재의 경우 2~4년 주기로 개최됩니다. 이에 반해 국내는 산업 특성과 관계없이 대부분 매년 개최됩니다.

그러다보니 해외에서 매년 큰 비용을 투자해 국내 전시회에 참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국내 기업의 경우 역시 새로울 게 없는 기술을 매년 선보여 관람객들이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독일과 한국전시산업이 크게 다른 부분은 전시산업발전기금(AUMA)과 전시사위원회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전시산업발전기금은 독일전시회의 세계화를 측면 지원하고 있고 또 전시사위원회의 역할은 전시 주최자가 전시 컨셉뿐만 아니라 임대료, 날짜, 기간까지 산업계와 소통하며 전시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도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질적인 면의 보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Q> 대표님이 보시기에 독일 전시회와 한국 전시회는 어떻게 다른지요?

A> 우리나라 사람들과 독일 사람들 생각이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규모가 크면 클수록 대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한 은행에 30년 동안 정기적으로 10만원 저축하는 사람보다 갑자기 10억 가지고 나타나는 사람이 더 큰 고객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독일은 10만원씩 30년간 납입한 고객이 우선입니다.

전시회에도 같은 룰이 적용되는데요. 부스를 크게 한다고 더 환영받거나 더 좋은 위치를 보장받는 게 아니고 얼마나 오랫동안 참가를 참가했는지, 제품이 얼마나 참신한지 등이 이런 세계적인 전시회에 참가하는데 있어 더 중요하게 작용됩니다.

Q> 국내 전시산업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A> 국내 전시산업은 지정학적인 측면과 중국과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불리한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다는 점과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연에 충실하고 국내외 마케팅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인터넷 보급 확대로 온라인상에서 제품을 홍보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이 전시산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A> 인터넷 보급이 오프라인 전시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고민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직접 체험 욕구가 있습니다. 특히 소재산업이나 기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또 업체마다 고민이 다릅니다. 전시회는 솔루션을 찾고,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지식만 얻을 뿐이죠. 오감을 동원한 공유나 체험은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온라인상에서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전시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독일 전시회 주최자도 이러한 시대 흐름을 인지하고 이 부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는 2년에 한번, 어떤 것은 5년에 한번 열립니다. 주최자는 전시회 개최 주기의 간극을 온라인으로 적극 해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참가사는 개최 훨씬 전부터 전시회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여 노출과 마케팅을 진행하고 관람객은 사전정보를 습득하여 효율적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전시회 종료 후에도 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참가사와 관람객간에 지속적인 소통이 진행 될 수 있도록 각종 툴을 이용하여 유도하고 있습니다.


Q> 단도직입적으로 전시회가 수출에 도움이 됩니까?

A> 당연하죠. 다만 전시회도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통상 세계 최고의 전시회에 쏠림현상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시회가 최고의 성과를 보장해 주진 않습니다. 전 세계 유수기업들이 참가하는 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웬만큼 사전마케팅을 하지 않고서는 바이어의 눈에 띄기도 쉽지 않습니다.

독일 와이어&튜브 전시회만 하더라도 2,600여 개 사가 참가하는데, 기존 참가자를 우선 배려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부스를 운좋게 받았다 할지라도 많은 바이어들이 기존 거래업체들의 부스를 먼저 방문하기 때문에 신규 참가사 입장에서는 바이어를 만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세계적인 전시회도 좋지만 중국, 인도 등 유망시장에서 개최되는 소규모 전시회 참가도 적극 고려하는게 좋을 거 같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 와이어&튜브전시회 주최자는 이런 이유에서 중국, 인도, 미국, 러시아, 태국 등 성장잠재력이 놓은 시장에 서브 전시회를 많이 개최합니다. 전시회 참가 목표를 명확하게 정하고, 어느 지역으로 참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해외 전시 참가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잠재력은 있으나 어떻게 할지 잘 몰라서 해외시장 진출을 망설이는 기업이 많습니다. 제품이 참신하고 가격 경쟁력만 뒷받침 된다면 이러한 무역전시회는 최상의 해외영업환경이 될 것입니다.

Q> 수출 확대를 위해서 전시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요?

A> 전시회도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독일 전시회는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독일 와이어&튜브 전시회만 하더라도 1년 전에 참가신청이 마감됩니다. 참가사들에게 그만큼 참가준비 시간을 길게 준다는 얘기도 됩니다. 부스를 확보하면 우리 부스로 바이어를 유도하는 일련의 노출과 마케팅을 필히 진행하고 또한 우리 제품에 최적화 된 부스디자인, 인테리어에도 과감히 투자해야 됩니다. 처음 나가서 성과가 좋지 않았다면 겸허한 자세로 결과를 분석하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무역전시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총알만 없을 뿐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제품이 참신하다 할지라도 어느 날 전시장에 갑자기 나타난 한국 기업에게 대량의 주문을 한다는 건 사실상 비현실적인 일입니다. 꾸준한 참가와 철저한 준비로 기업 인지도가 높아지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Q> 향후 라인메쎄를 어떻게 키울 생각인지요?

A> 지난 2018년 무역의날 국내기업들의 수출지원을 한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내의 참신한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해외 전시회 참가를 통한 수출확대에 적극 기여하고자 합니다. 또한 라인메쎄가 세계 유명전시회의 대명사로 통하는 독일 전시회에 특화된 기업인만큼 30년 이상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우리나라 전시산업이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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