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해 스틸데일리 기자
▲ 최양해 스틸데일리 기자
국내 철강업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공급과잉 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해외 수출은 높아진 무역장벽에 가로막혀 쉬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 설상가상으로 내수 시장을 파고 드려는 중국의 거센 추격까지 맞닥뜨린 상태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 기업만의 고충이 아니다. 국내 대부분 철강사들이 피부로 느끼고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화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눈앞에 떨어진 이삭줍기에만 바쁜 모습이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만연해졌다는 것. 해외 시장에선 저가 판매 경쟁이 불붙고, 국내 시장에선 수입산 공세에 치여 고전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은 언감생심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도 고초가 뒤따른다. 해외 수출 길을 열기 위한 목소리는 분산되고, 국내 시장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도 탄력이 붙기 어렵다.

물론 여러 여건상 협력과 상생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동업자 정신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의 이익을 좇아 혼자 살 길을 모색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속한 위치에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얘기다.

상공정 투자업체는 업스트림(Up Stream)에서 빛나고, 하공정 투자업체는 다운스트림(Down Stream)에서 빛날 때 비로소 건강한 산업구조가 형성되리라 생각한다.

특히나 해외 시장에서만큼은 동업자 정신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 전 세계적으로 자국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추세에서 우리 제조사들이 살아남는 길은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같은 목소리를 내고, 서로 도우며 수출 시장의 규모를 넓힐 필요성이 있다.

최근 귀감이 될 만한 사례가 있다. KG동부제철의 석도강판 쿼터 면제를 위해 경쟁사들이 힘을 보탠 이야기다.

국내 석도강판 업계는 KG동부제철, TCC스틸, 신화실업 등 세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 KG동부제철은 지난 9월말 미국향 석도강판에 대한 쿼터 면제를 받았다. 총 5,700톤 물량이었다.

KG동부제철은 면제받은 쿼터 물량을 수출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우선 자사의 연간 할당량인 6만 2,000톤을 빠르게 채운 뒤, 연말까지 총 6만 7,700톤을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변수가 있었다. 쿼터 면제 물량을 추가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규정상 국산 석도강판 쿼터 할당량인 7만 3,100톤을 모두 채워야했던 것. KG동부제철의 할당량이 전체 85%(6만 2,000톤)으로 높긴 했지만, 그 외 15%를 차지하는 경쟁업체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쉽게 말하면 KG동부제철이 자사 할당량인 6만 2,000톤을 모두 채웠다 하더라도, 경쟁업체가 앞당겨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쿼터 면제 물량 수출은 물거품이 되는 셈이었다.

이 때 TCC스틸, 신화실업이 동업자 정신으로 다가섰다. KG동부제철이 쿼터 면제 물량을 수출할 수 있도록 미국향 쿼터 소진에 속도를 내기로 약속했다. 의무는 아니었지만, 경쟁 관계를 내려놓고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다. 연말까지 남은 시간이 빠듯해 실효를 거둘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협력을 약속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처럼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 국내 업체의 협력은 계속 강화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도 한국 철강산업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힘을 합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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