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경영연구원 유승록 자문위원
▲ 포스코경영연구원 유승록 자문위원
한국 철강산업은 성장의 변곡점에 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 철강수요산업들의 성장이 정체 혹은 감소를 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가격전략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적으로 미래의 환경변화 트랜드를 깊이 있게 성찰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과연 국내 철강업체들이 얼마나 이러한 구조적인 환경변화를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일시적인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만 정작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구조적인 환경변화에는 둔감할 수도 있다. 혹은 너무 많은 전문가나 뉴스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진부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환경변화가 일어나게 된 근원적인 요인과 그 환경변화가 기업 혹은 산업에 줄 영향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업, 산업의 입장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대응할 것인가 하는 실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미래 변화를 주도할 트랜드 3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Trend 1] 수요와 수요구조의 근원적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먼저 철강산업에 대한 파급영향이 가장 큰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 수요에 대해 살펴보자. 국토교통부의 통계의 따르면 2015년 현재 기준으로 한국의 총 주택 수는 1,712만 채에 이르고 있다. 이중 아파트는 1,038만 채로 전체 주택의 약 61%, 단독주택은 23%인 396만 채이다. 2015년 한국의 인구가 5,101만 명임을 감안하면 주택 1채당 거주하는 사람은 채 3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떠할 것인가? 인구증가 속도가 감소하고 있고, 노령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17~2067’에 따르면 2020년부터 한국의 인구는 거의 정점에 도달하게 되고 2030년 이후부터는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주택 수요가 계속 증가할 수 있을까? 1인 가구의 비중이 2015년 27.2%에서 2025년에는 31.9%로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통계청에서 발표한 바 있다. 앞으로 주택 수요는 소형 주택이 이끌어 갈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요약하면 향후 국내 주택산업은 수요의 감소와 소형 주택 위주의 시장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트랜드 변화를 반영하여 철강업체들의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어떠한가? 수요도 포화, 생산도 포화 상태이다. 연간 국내 승용차 내수는 100만~120만 대 내외에서 등락을 계속하고 있고, 승용차의 국내 생산은 4백만 대 이하로 감소했다. 한국의 총 차량등록 대수가 2180만대, 가구당 평균 1,21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국내 자동차 생산과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국내 자동차 수요는 소형이거나 아니면 개인별로 차별화가 가능한 SUV, 픽업 차량에서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조선산업 경기는 향후 20년 동안 침체를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LNG 선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주가 발생하고 있으나 가격은 비싸지만 건조 기간과 철강수요 유발 측면에서 볼 때 벌크, 탱크, 컨테이너 등 일반 상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리고 선박 수명이 25년~30년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20년 동안은 2007년, 2008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앞으로 한국의 조선산업이 LNG선을 제외한 일반 상선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앞으로 전통산업에서의 철강 수요는 기본적으로 양적 성장의 한계와 소형화에 대한 수요 증가라는 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사전적인 대응이 없다면 국내 철강산업의 생존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에는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철강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수도 있다. 이러한 미래수요에 시의 적절하게 대응하고 나아가 관련된 제품을 빠른 시간 내에 개발해 나가는 것도 현재 국내 철강산업이 도전해나가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자동차 튜닝시장과 미세먼지와 관련한 공기청정기 시장이 새로운 수요 시장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분야이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처가 생겨날 수 있다.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가 미래 자동차로 각광을 받고 있으나 철강의 새로운 수요라기보다는 기존 엔진 차량의 대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단, 사용되는 소요량이나 제품은 달라질 수 있다.

[Trend 2] 가치관 변화에 대한 다양한 정책과 전략이 필요하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일에 대한 가치관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크게 회자되고 있는 ‘일과 생활의 균형(Work & Life Balance, 워라밸)’이 바로 그것이다. 연봉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개인 생활을 보장하지 않으면 유능한 인력을 채용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GE의 혁명을 이끈 잭 웰치(Jack Welch)조차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가족 또는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위해서 가고 싶은 곳이 없나요?’라는 질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5년 10월 경, 서울대 재학생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메인 뉴스로 등장한 적이 있다. 해당 학생이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올린 글이 ‘저녁이 있는 삶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9급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는 것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생산활동 인구의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성인력의 활용을 대폭 늘여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소위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직장을 포기해야 했던 경력단절여성들의 활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직장 여성 인력이 임신, 출산, 육아를 병행하면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교사나 공무원을 선호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직장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정부차원에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앞으로는 단순히 현금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나 연봉이 직업 선택과 이직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이 될 수가 없다.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관련된 정책이나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지가 핵심요인이 될 것이다. 미래 기업들은 직접적인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고 이에 더하여 인력관리에 대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Trend 3]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활용 여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미래를 변화시킬 기술적인 대세가 되고 있다. 소위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Big Data,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3D프린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기술들로 ‘대량생산(Mass Production)’만이 아니라 동일한 공장에서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대량차별화(Mass Customization)’ 생산이 동시에 실현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 팩토리의 대표적인 사례인 독일의 ‘아디다스’ 는 단 10명의 인원만으로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했고, 최종 소비자가 제품을 주문하면 바로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E2E(end to end) 방식도 채택하고 있다. 즉, Mass Customization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제조업의 새로운 혁명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철강업계에서도 스마트팩토리의 도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단순히 높은 단계의 자동화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판매측면에서는 플랫폼사업(Platform Business)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새로운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주요한 농기구인 호미가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호미를 사용해 본 미국인들은 호미를 쓰기 전에 어떻게 정원을 가꾸었는지 의문일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조차 잊혀져가고 있던 호미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미국인들에게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는가? 바로 아마존이라는 인터넷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토이저러스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장난감 회사는 아마존과의 불화와 경쟁에서 패한 후 도산에 이르기까지 했다. 플랫폼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세상이 될 날도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조만간 산업재로까지 확산되고 일반화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한국에서도 일부 건설용 자재 회사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온라인 플랫폼 상에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직접 구매로까지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춘 소위 맞춤형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이 가지는 Network 효과는 플랫폼 기업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새로운 판매루트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기반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은 기존 생산방식과 판매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Mass Production 시대를 넘어 모든 수요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한 Mass Customization 시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유통산업은 온라인 플랫폼이 빠른 속도로 대체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바람에 신속히 대처하지 않으면 어떠한 기업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변화와 혁신에 어려운 철강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내 철강산업은 장기적인 미래에 대응할 때이다. 수요는 정체되고 수요구조는 소형화로 변화될 것이다. 직업에 대한 인식변화는 기업들의 인력 정책을 근원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은 기업들의 경쟁력 원천을 원천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그 미래를 얼마나 잘 예측하고 시의 적절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기업들이 직면하는 환경은 동일하다. 그러나 어느 기업은 파산하고 어느 기업은 승승장구한다. 그 차이는 근본적으로 변화의 기저를 바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계획으로만 가지고 있느냐, 대응책을 실행에 옮기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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