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 곳에서 40년의 한 자리를 지켜온 철근 유통업체가 있다. 서울강재는 내일의 고객보다 어제의 고객과 신뢰를 쌓아온 소신을 긴 세월의 소박한 비결이라 말한다. 사업의 종류나 규모를 떠나 40년의 의미는 각별하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서 지켜온 서울강재는‘뿌리 깊은 나무’를 연상케 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신뢰와 앞으로의 견실함에 더 큰 믿음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의 부담이 커진 철근 시장의 현실에서, 연륜 많은 원로의 한 마디가 어느 때보다 마음으로 와 닿는 요즘이다. 서울강재 40년을 이끌어온 유자열 대표를 만나 남다른 소회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서울강재(주) 대표이사 유자열
▲ 서울강재(주) 대표이사 유자열
Q> 독자 분들께 서울강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서울강재가 문을 연지 올해로 정확히 40년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했던 1977년만 해도 지금처럼 풍족한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업에 대한 큰 포부나 목표를 갖기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계형 사업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철근 제조업체에 근무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작지만 절박했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큰 욕심 없이 시작했던 철근 유통업이 활발했던 건설시장 덕분에 기대 이상의 성장을 이룬 것 같습니다.

저희 서울강재는 철근을 전문으로 취급 하는 유통회사입니다. 수요처들의 요구에 따라 일부 H형강 공급도 병행하고 있으나 많은 양은 아닙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약 7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연간 15만톤 가량의 철근 유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신속한 납기, 정확한 사후처리를 원칙 삼아 고객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업종을 떠나 40년을 이어온 의미는 각별하다. 굴곡 많은 철근 유통시장에서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A> 글쎄요. 규모나 이익에 대한 욕심보다 고객과의 신뢰를 다져온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일 수 있겠습니다. 건설 호황으로 자연스레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저런 유혹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던 초심처럼, 철근 유통이라는 외길을 벗어난 적은 없었습니다.

서울강재는 소비자 위주의 판매를 이어왔습니다. 중소형 건설사 실수요를 비롯해 도매와 소매 유통을 적절한 균형으로 유지한 것도 부실과 위기를 줄인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큰 소신은 ‘신뢰’입니다. 새로운 거래처를 늘리기보다, 기존 거래처와의 신뢰를 놓치지 않은 것에 노력했습니다. 또한 수급상황이나 가격 흐름에 따라 거래조건을 달리 하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그것이 긴 세월 동안 거래처들이 서울강재를 다시 찾는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기회로, 오랜 시간을 함께해준 고객 분들께 마음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중인 서울강재(주)의 유자열 대표이사(우)와 유선열 상무(좌)
▲ 인터뷰중인 서울강재(주)의 유자열 대표이사(우)와 유선열 상무(좌)

Q> 철근 유통업과 함께한 오랜 세월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난관과 그것을 극복한 경험담을 듣고 싶다.

A> 대부분 비슷할 것 같은데요. 저 역시 IMF 시절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그 때만 해도, 철근 유통시장에 어음거래가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자고 나면, 위기를 못 넘긴 거래처들의 부도소식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10년 쯤 뒤에 재현된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기억에 남는 고비였습니다. 굴지의 건설 회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무너지던 일은 정말 암담했습니다. 부족한 법적 지식으로, 거래처들의 부도 피해를 수습하느라 참 많은 애를 먹었기도 했습니다.

피해를 줄여보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래피해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순리대로 만회의 기회를 찾는 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힘이 됐습니다.

무리한 욕심 없이 이어온 사업방침도 위기에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항상 이익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익이 날 때 마다 조금씩 자금을 비축했던 것이 위기를 넘기는 든든한 기반이 됐습니다. 빠듯한 여신거래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힘입니다. 재무구조가 좋다보니, 저희 회사에 대한 금융권의 신뢰도 자연히 좋아지더군요. 급하게 꼭 필요한 여신을 써야할 상황에서 또 한 번 큰 힘이 되었습니다.

Q> 외형확장 등 다양한 이유로 사업장을 넓혀 외곽으로 이전하는 경우들이 많다. 서울강재가 40년 동안 도심의 같은 자리에서 사업을 이어온 이유나 소신은 무엇인가?

A> 사업을 하면서 외형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시장흐름을 무리하게 앞서나가지 않고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하다보니 외형확장은 우선의 일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긴 세월을 한 자리에서 지켜온 이유 중에는 저희 회사의 거래특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중소건설사나 도소매를 아우르는 거래의 특성상, 수요처나 현장과의 인접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속한 수요대응과 운송비 부담을 줄인 합리적인 가격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장점입니다.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신뢰와도 밀접합니다. 40년 동안이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업을 하다 보니, 저희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자연히 높아지는 효과가 나더군요. 오랜 세월 동안 거래를 이어온 수요처들은 물론, 저희 회사 앞을 오가는 손님들도 신뢰를 갖고 찾아오곤 합니다.


Q> 지난해 이례적인 호황을 겪었던 철근 시장은 안팎의 기대와 달리 큰 혼선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동종업계의 원로로써, 철근 유통시장의 문제와 바람직한 발전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지금의 철근 시장은 활발하던 경제성장 시절과 많이 다릅니다. 경제 전반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건설업 또한 예전과 같은 기대를 갖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철근 유통업 입장에서는 안정감 있는 생태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생각합니다. 시황악화를 의식한 메이커들이 직거래 비중을 늘리면서 중간 위치인 유통점들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그렇다하더라도, 유통점들의 역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요합니다. 흐름이 빠른 철근 거래의 특성상 도소매의 역할을 병행하는 신속한 수요대응이나 부실의 완충작용 등 메이커와 유통점의 역할분담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졌다 볼 수 있겠습니다.

시황변화에 따라 수시로 판매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일은 메이커와 유통의 공조가 취약해지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메이커와 유통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효율적인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동반성장의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메이커는 경쟁력 있는 철근 생산과 대형 실수요를 중심으로 대응력을 높이는 게 맞습니다. 또한, 유통은 중소형 실수요나 도소매 판매를 중심으로 안정감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할 것입니다. 유통시장 역시 분명 자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장의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리하게 앞서 나가다보면, 오히려 부실의 문제가 커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무분별한 재유통 거래로 생태계가 교란되는 것입니다.

힘든 시장의 틈새를 노리는 재유통, 소위 ‘나까마’로 불리는 재유통 세력이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일관된 판매방침으로 정상적인 거래를 지키는 유통점들이 손해를 보는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무책임한 거래를 줄이고, 차분히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유통시장을 스스로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Q> 서울강재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부활동 등 숨은 선행을 이어온 걸로 알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나눔에 대한 철학은 무엇이었는가?

A> 별다른 일은 아닙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사업을 시작했고, 힘든 일들을 겪다보니 자연히 나눔에 대한 소박한 소신이 생긴 것뿐입니다. 회사를 운영해 이익이 나면, 조금이라도 나누고 도와가며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음이 사업을 번창하게 하는 힘이 되어 돌아 온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선행이나 철학이라 대단하게 표현할 일은 아닙니다.


Q> 불확실성의 부담이 높아진 철근 시장에서 서울강재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경영방침은 무엇인가. 또 앞으로 어떤 발전상을 그리는가?

A> 불확실해진 시장은 모두에게 큰 부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회사 내부적인 안정이 아닐까 합니다. 회사 안이 화목해야 밖에서의 일도 잘 풀리지 않을까요?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모든 직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역량을 집중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쏟을 생각입니다.

사업적으로는 안정적인 거래기반을 구축하는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철근 시장은 수요 감소와 불확실성 모두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안정성의 가치가 어느 때 보다 커진 상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크고 작은 실수요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거래구조를 바꿔갈 생각입니다. 최근 들어 수요처와 재유통 소매시장에서 수입산 철근에 대한 요구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흐름에 맞춰 수입산 철근 거래를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불가피한 구색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국내산 철근 유통의 소신을 이어가려 합니다. 국내산 철근을 공급하고 쓰는 게 결국 상부상조의 선순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철근 가공업 진출에 대한 권유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철근 판매와 가공은 유통점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바뀌어 가는 게 맞다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유통판매와 시너지가 될 수 있는 철근 가공업의 진출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적화된 사업형태에 대한 고민으로, 내부적인 설득력이나 거래처의 의견을 면밀히 타진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동종 철근 업계나 시장과 나누고 싶은 공감대가 있다면?

A> 지금의 철근 시장은 큰 흐름의 변화를 겪는 과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시적인 건설경기 호조로 철근 시장도 활력이 더해졌지만, 당장의 호황을 즐기는 것보다 어려워질 시장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이익을 쫒지 않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진리는 ‘돈을 쫒다보면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철근 시장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안정감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것으로 봅니다.

정도(正道)를 걷는 한 사람은 외로울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면 큰 힘이 되고 대세를 이룰 수 있습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무리한 집착을 줄이고 꿋꿋하게 협력의 공감대가 나눠지길 기대합니다. 2016년 철근 업계 모두가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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